사이드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

어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선택하기 전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목적에 대해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사이드 프로젝트는 디자이너로 폭넓게 성장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통로였습니다. 폭넓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안 하던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야 했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를 지속해야 해야 했죠.

그렇게 시장에서 저의 가치를 충분히 높이면, 제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일을 원하는 장소에서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저는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고, 저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선택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세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첫째, 본업에 도움이 되는 일 저는 제게 이득이 될지 아닐지 확실하지 않은 사이드 프로젝트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시간, 돈, 에너지 어느 하나 손해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본업에 도움이 되는 일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본업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본업을 잘하기 위해 훈련해야 하는 종목들도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 종목 중 하나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삼으면 본업과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죠.

사이드 프로젝트 자체가 성공해도 좋지만, 실패하더라도 본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이 남는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계산이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사이드예요. 메인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내 전부를 쏟아부어야 하고 실패하면 끝장인 일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어요.

첫 번째 원칙 덕분에 지금까지도 폭넓은 시각으로 서비스 디자인을 하는 데에 사이드 프로젝트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둘째,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 스스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발의하고 마무리해야 그 과정과 결과물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혹시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신 적이 있나요? 클라이언트가 목표를 정하고 내가 그것을 달성하는 일은, 클라이언트가 핸들을 쥐고 내가 뒤에서 미는 자전거와 비슷해요. 그래서 실컷 밀어서 도착한 곳에서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어”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이러한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수 없고, 결국 오래갈 수 없게 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온전히 반영해야 애정을 갖고 지속할 수 있고, 성과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 제가 생각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봉사나 취미와는 범주가 달랐어요. 회사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던 시절 다양한 동호회 활동에 참여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단순한 활동에서 그치는 일에는 충분한 동기가 생기지 않았죠. 그때 저는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컨대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풍성하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 같은 것 말이죠. ‘업계에서 디자이너로서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니까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연봉이든, 권한이든, 명성이든 하나라도 따라오면 좋겠다는 주문을 속으로 외웠죠. 회사 안에서 출발해 밖으로 나아가기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자원(1) 시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안 하던 일을 추가로 하려다 보니 시간이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애매하게 버리는 시간을 줄인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머지않아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돈을 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시간은 돈처럼 마이너스 통장에서 빌려올 수도 없더라고요.

저는 24시간 중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장 지분이 큰 ‘일하는 시간’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의 양을 줄일 수는 없고, 대신 일을 효율적으로 해서 야근을 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특히 반복되는 업무 중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효율화하기 위해 아래의 세 가지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첫째, 회의와 동시에 회의록 작성하기 우선 회의록 작성에 들이는 시간부터 줄이기로 했습니다. 원래 저는 회의 중엔 의견을 나누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믿을 만큼 고지식했어요. 그러다 보니 회의가 여러 개 있거나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회의록을 작성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기도 했죠.

그러던 제가 회의록을 쓰느라 야근을 하는 건 어리석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회의를 하면서 회의록을 쓴다고 문제가 생길까?’ 회의록을 쓰느라 회의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추측일 뿐, 실제로 경험해보진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한 번 해보기로 했어요.

우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회의에 들어가기 전부터 ‘회의를 하는 목적’과 ‘참여하는 사람의 역할’, ‘각 조직의 입장’ 등을 미리 숙지했죠. 덕분에 회의의 흐름을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회의 중에는 키워드를 메모해 두고 적절한 시점에 의견을 내기도 했어요. 긴장감이 떨어질 때는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요약해 공유하고, 당장 결론이 안 날 것 같은 사항들은 액션 아이템(action item)*으로 정리하며 회의 종료에 대한 합의를 이끌기도 했어요.

  • 회의 후 진행 상황을 추적하거나 리서치 및 실행해야 할 사항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미팅이 종료되는 시점에 회의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누구나 회의 직후에 받아보는 회의록을 ‘좋은 회의록’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었어요. 빨리 공유받는 회의록, 액션 아이템이 포함된 회의록은 여러 동료들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TIP. 회의록 작성 시간을 줄이는 법

회의 전

  • 맥락 파악하기 (회의 배경, 관련 조직, 이슈, 향후 일정)
  • 회의에서 함께 결정해야 할 안건 요약하기
  • 이슈에 대한 조직(나)의 입장 정리하기

회의 중

  • 발화 비중이 많은 화자 중심으로 입장 정리하기
  • 많이 반복되는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하기
  • 안건별로 정리한 회의내용을 구두 요약하고 참석자들에게 동의 얻기
  • 회의 종료 전 참석자들과 액션 아이템, 다음 회의 일정 결정하기

회의 후

  • 회의 요약내용, 액션 아이템, 향후 회의 일정 공유하기
  • 이슈가 될 수 있는 내용은 리더에게 회의 행간과 함께 공유하기

둘째, 리서치를 효율적으로 두 번째 목표는 리서치 시간 줄이기였습니다. 어떤 직무를 맡고 있더라도 리서치 없는 회사생활은 찾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디자인 컨설팅 업무를 위해 분석해야 하는 자료가 방대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리서치로 하루 업무시간을 다 쓸 수 있을 정도죠. 결국 리서치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할애한 시간 중 일부는 이동 중에 채워보기로 했어요. 검색 수단도 핀터레스트, 텀블러, 인스타그램같이 스마트폰 앱 중심인 만큼 리서치는 이동 중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노션(Notion)으로 관리하고 있는 디자인 레퍼런스 채널 ©이승준 이외에도 효율적으로 리서치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중 하나로 위의 사진처럼 리서치할 때 자주 접속하는 웹페이지를 정리해 두었어요. 어떤 종류의 디자인을 리서치할 때 접속하는지 ‘타입(Type)’ 탭에 입력하고, 바로 접속할 수 있는 URL은 ‘링크(Link)’ 탭에, 관련된 소재는 ‘태그(Tag)’ 탭에 표시했습니다.

시대적으로 인기를 끄는 브랜드, 디자인, 디자이너, 플랫폼은 계속 달라지기 마련인데요. 노션의 ‘스코어(Score)’ 탭을 활용해 트렌디하고 인기 있는 사이트를 표시하고 있어요. 자주 찾는 웹사이트의 중요도를 계속해서 체크하는 것이죠. 업무에서 리서치는 계속될 테니까 자신에게 유효한 리서치 방법을 계속 시도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TIP. 리서치 효율을 높이는 법

리서치를 위한 시간 확보

  • 시간 정하기: 일주일 또는 하루에 얼마 정도의 시간을 할애할지 결정
  • 자투리 시간 활용하기: 스마트폰을 통해 이동 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에 리서치하기

나에게 맞는 분류체계 만들기

  • 카테고리: 디자인, 스타트업,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분류
  • 중요도: 5점 만점, 상-중-하 등의 위계 정하기
  • 소재: 카테고리별 세부 키워드. 디자인이라면 UX, UI, 타이포그래피, 제품, 웹, 모바일 등

나에게 맞는 정보 스크랩 방법 정하기

  • STEP 1: 모바일과 태블릿, 웹에서 모두 연동할 수 있는 도구(노션, 에버노트, 포켓 등) 중 이동 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모바일에 적합한 도구 선정
  • STEP 2: 무료 기능부터 시작, 부족한 기능이 있을 때 유료 기능으로 업그레이드
  • STEP 3: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를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중요도 업데이트

셋째, 반복적인 업무를 간소화할 수 있는 도구 활용 일을 하다 보면 반복적으로 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미팅 일정을 잡는 것부터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 보고서를 쓰는 일까지. 저는 매일 어떤 업무를 가장 많이 반복하는지, 가장 오래 하는지 일주일 동안 기록해봤어요. 그리고 적절한 도구를 사용해 이 업무들을 효율화할 방법을 고민했죠.

예컨대, 저는 모바일 앱 화면을 설계하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사용자가 보는 스마트폰 화면에 어떤 레이아웃과 인터랙션(interaction)을 적용할지 기획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제조사별로 스마트폰 해상도가 달라서 동일한 작업을 여러 해상도에 맞춰 반복해야 했습니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모양, 형태가 다른 버전으로 베리에이션(variation) 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죠.

저는 스케치(Sketch)와 제플린(Zeplin)이라는 디자인 프로그램을 활용해 한 번의 작업으로 해상도가 다른 여러 스마트폰에 맞는 화면을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만약 기존에 사용했던 포토샵과 파워포인트 같은 도구만 고집했다면, 저는 반복적인 업무에 불만을 가진 채로 일했을 겁니다.

시간 절약에 탁월한 도구들의 공통점

통합: 반복적인 작업을 한꺼번에 처리 Ex) 노션: 자동으로 목차를 생성해주는 ‘테이블 오브 콘텐츠(Table of Contents)’ 기능 Ex) 구글 문서, 에버노트: 데이터 한 번에 가져오기 호환: 다양한 포맷으로 산출물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 Ex) 스케치: 작업물을 PNG, JPG, TIFF, WEBP, PDF, EPS, SVG 7가지 포맷으로 저장 공유: 클라우드에 파일을 저장하여 실시간으로 동료와 공유 Ex) 구글 드라이브: 문서 동시 수정 기능 편의: 작업에 필요한 템플릿을 제공해 작업을 손쉽게 시작하도록 지원 Ex) 에버노트: 다른 사용자가 만든 템플릿을 복사해서 사용 가능 복원: 자동저장 기능을 제공해서 수시로 저장하지 않더라도 버전을 업데이트하면서 산출물 백업 조금만 찾아보면 반복적인 업무를 개선해줄 도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를 활용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바꿔보세요. 우리는 야근 대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 하니까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자원(2) 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삶이 훨씬 간소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충분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액으로 규정하지 못한다면―그리고 규정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자유롭게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표를 정할 수가 없다. 대신에 자발적으로 고용주의 노예가 되어 타인의 우선순위에 복장 하며 살게 될 것이다.

  •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 중에서

초기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돈을 벌기 어렵습니다. 잘 짜인 사내 프로젝트를 활용해서 투입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게 좋은 이유이기도 하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 오히려 돈이 듭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의 범위를 한정해야 합니다. 지출하는 비용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열심히 할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자기만족에 그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사이드 프로젝트에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쓰는 게 적당할까요? 저처럼 급여가 유일한 소득원인 회사원이라면 계산도 간편합니다. 수입이 고정되어 있으니까요. 우선 저는 매달 쓸 수 있는 여유 자원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 봤습니다.

소득 - 지출(생활비+저축+대출이자+투자+통신비+교통비+교육비+쇼핑) = 남은 돈

이상적으로 보면 소득을 늘리고 지출은 줄여야 했어요. 초기에는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벌어들이는 추가적인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지출을 줄일 수 있을까?’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줄일 수 있는 항목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저는 ‘투자’와 ‘교육비’를 합산한 총액에서 사이드 프로젝트에 쓸 수 있는 예산을 할당하기로 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디자이너로서 나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나를 위한 투자요, 교육비의 대체재’라는 자기 합리화에 성공했거든요. 덕분에 저는 정해진 범위 안에서 죄책감 없이 돈을 쓸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절대적인 금액으로는 급여의 1/3을 상한선으로 생각했어요. 만약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해서 비용 한도를 초과할 것 같으면,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먼저 시작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별로 사용한 비용과 항목 리스트 ©이승준 돈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프로젝트에 할당하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 더불어 사이드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비용을 반드시 수익으로 바꿔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부터 배우기

사이드 프로젝트는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만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평가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하고 싶다면, 본받을만한 사람이나 프로젝트 또는 브랜드, 즉 선행자를 찾아 배울 만한 점을 빠르게 흡수해야 합니다. 더 잘하는 사람과 나를 비교해야 빨리 배우고, 비용도 아낄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선행자와 자신의 성과를 비교하면 위축되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 과정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동네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도 전날 밤, 런던 스타디움에서 상대 팀 선수 8명을 따돌리며 70미터를 질주해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를 이야기하거든요. 손흥민 선수와 나의 신체적 능력을 비교하는 대신 그가 축구를 즐기는 마음, 축구를 할 때 몰입하는 태도를 의식하며 뛰곤 해요.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선행자와 저를 적극적으로 비교했어요. 선행자가 걸어온 과정을 잘 만들어진 참고서처럼 활용하는 방식이었죠. 선행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일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이점이랍니다.

지금까지 제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설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말씀드렸어요. 다음 챕터에서는 제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했는지 성과 측정 방법까지 포함해 구체적으로 소개해드릴게요.

Q. 사이드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개선한 방법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해서 성과평가를 했습니다. 혹시 새해 첫날 피트니스에 등록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성과평가를 하지 않아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기만족의 시기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일이에요. 동시에 본업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지치는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즐거움과 동기부여가 될 만한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게 돼요. 이런 시기가 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할 힘을 내부에서 찾아야 해요.

피트니스에 등록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루한 근력 운동도 꾸준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동을 하면서 근육량, 체지방량, 기초대사량 등 운동과 관련 있는 데이터를 측정하고 수치의 변화를 확인하면서 ‘좋아진다’는 자신감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예요. 최초에 설정한 목표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효용감을 느낄 수 있죠. 효용감을 느끼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본업과 계속 병행할 힘이 생깁니다. 만약 수치가 저조하다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성과를 개선하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겠죠. 이러한 것들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성과 측정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저는 두 가지에 집중해서 진행했어요.

첫째, 프로젝트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정량적인 지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데일리 리포트의 경우 두 가지 기준을 세웠어요. 구독자들이 뉴스레터에 만족하고 있다면 메일을 받은 시점에서 24시간 안에 볼 것이라는 기준과 이번 달에 받은 뉴스레터가 좋다면 다음 달에도 구독할 것이라는 기준이었죠. 이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 가지 수치를 기록하고 추이를 분석했어요.

  1. 메일을 받는 사람의 숫자

  2. 24시간 이내 개봉하는 비율

  3. 재구독률

둘째, 주기적으로 고객의 피드백을 수집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초기에는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어요. 행여 누군가에게 스팸메일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들이 실제로 읽고 있는지,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매달 마지막 데일리 리포트를 보낼 때 다음 달 재구독 의사를 묻고, 뉴스레터에 대한 피드백을 구했습니다. 메일 내용은 아래와 같이 구성했어요.

데일리 리포트 구독 의사 업데이트 설문조사

다음 달에도 Daily Report를 받아보시겠어요? Y or N 이번 달에 받은 Daily Report 중 어떤 편이 가장 좋았어요? 날짜, 제목 혹은 키워드를 적어주세요. 다음 달부터 Daily Report를 함께 받아 보고 싶은 동료나 지인이 있다면 이름과 메일 주소를 알려주세요! (예: 이승준, [email protected])

퍼스널 브랜딩, REDBUSBAGMAN

퍼스널 브랜드 레드버스백맨의 대표 이미지. 필자와 일러스트 작가 황로우가 함께 작업했다. ©이승준 챕터1에서도 언급했듯이 레드버스백맨은 제 퍼스널 브랜드에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확장하기 위해 원래 이름 대신 사용하고 있어요. 이름과 이미지에 저의 일상을 담고 있죠. 작업물을 대외적으로 공개할 때 활용합니다.

Q. 어떻게 탄생했는지?

퍼스널 브랜드가 없을 때는 “OO 회사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하는 이승준입니다”라고 저를 소개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느 회사에 다닌다는 게 내 정체성에 그렇게 중요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회사와 부서가 달라져도 일관성 있게 나의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야 스스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마침 그 시기에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하면서 지하철 대신 광역버스를 타고 먼 길을 오가야 했어요.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서 움직이다 보니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운동도 집 근처가 아니라 주로 회사 주변에서 했어요. 운동복과 커피, 보조배터리 등 필요한 물건을 넣기 위해 큰 백팩을 메고 다녔고요.

거기에 착안해 저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한번 놓치면 2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큰 걸음으로 걸어가는 백팩을 멘 사람’. 그렇게 레드버스백맨이 탄생했어요. 이제 저는 “서비스 디자이너, 레드버스백맨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Q. 퍼스널 브랜드란 무엇이며 어떤 장점이 있는지?

레드버스백맨의 홈페이지. 사이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채널로 사용 중이다. ©이승준 퍼스널 브랜드는 자신을 알리는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페르소나(persona)’의 어원은 가면이에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죠. 심리학에서는 현대사회에서 건강한 자아를 갖고, 균형감 있는 생활을 하려면 페르소나를 잘 쓰고 벗어야 한다고 해요.

가족 안에서의 나의 모습,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 친구들과 있을 때 나의 모습,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의 모습은 다를 수 있잖아요. 상황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꺼내는 거예요. 저는 퍼스널 브랜드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가면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에겐 필명이, 프로게이머에게는 닉네임이 있는 것과 비슷하죠.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튀는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에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동화되려는 기제가 있어요.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더라도, 소속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내 모습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갈등하게 돼요. 이럴 때 회사와 무관한 퍼스널 브랜드를 활용하면 두 정체성의 충돌을 막을 수 있어요.

더불어 퍼스널 브랜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줘요. 실패하는 건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내 페르소나 중 하나라고 인식할 수 있거든요. 이러한 마음가짐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심리적인 에어백이 되어 줄 겁니다.

퍼스널 브랜드를 갖는 건, 답답한 수트와 넥타이 대신 점프하기 좋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될 겁니다.

레드버스백맨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 주로 좋아하는 장소와 브랜드 사진을 업로드한다. ©이승준 Q. 퍼스널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은?

어쩌면 모두들 이미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갖고 있을지 몰라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계정을 만들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어떤 아이디를 만들까?’라는 질문에는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어요.

퍼스널 브랜드를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일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담은 인스타그램 게시물, 내가 가장 자주 가는 장소, 좋아하는 브랜드,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활동 등에서 퍼스널 브랜드가 될 만한 단서를 찾아보세요!

저는 저의 퍼스널 브랜드, 레드버스백맨과 함께 더 많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금처럼 혼자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퍼스널 브랜드가 제가 해보지 않은 일들에 도전할 수 있게 도와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이렇게 작은 수익이라도 만들어내는 일은 아래의 세 가지 이유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틀림없는 효능감을 선사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수익은 월급과는 느낌이 전혀 달라요. 절대적인 금액은 월급보다 작을 수 있지만, 오로지 내 의지와 성과로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번 돈으로 산 책과 커피, 선물은 왠지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둘째, 언젠가 새로운 일로 생활할 수 있겠다는 구체적인 가능성으로 연결됩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실제 금액으로 가능성을 확인하는 거죠. 그럼 회사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지고, 더 당당하고 여유로워집니다. 사이드 프로젝트 수익만큼은 회사와 무관하고, 또 회사를 바꾸어도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셋째,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됩니다. 수익은 사이드 프로젝트 여정을 지속하기 위해 중요해요. 즐거움, 보람 등과 함께 하나의 추진 로켓이 되어 주죠.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번 돈은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바탕이 돼요. 그 사이드 프로젝트도 다시 수익을 만드는 기회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된답니다.

성취: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냥 살기보단 성장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찾아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과 비교하면 사이드 프로젝트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책임져야 하고,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해 성과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일까지 주도적으로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SCSA 9기 인사이트 세션 특강 ©이승준 2019년 10월, 삼성그룹 SCSA 교육과정에서 인사이트 세션 특강을 맡았습니다. 제가 세 번째 진행하는 특강이었는데요. 준비하면서 지난 특강에서 교육생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확인했습니다. 살펴보니 강의를 마치고 개인적으로 자료를 받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이번에는 강의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두고,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안내했습니다. 강의 자료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다운로드할 수 있게 설정해두어, 몇 명이나 자료를 다운로드 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강의를 거듭할 때마다 교육생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만족도도 조금씩 높아졌죠. 짧은 기간 안에 ‘피드백 받기 - 개선점 찾기 - 개선 사항 반영하기 - 만족도 측정하기’라는 사이클을 적용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2020년 3월에도 네 번째 인사이트 세션 특강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답니다.

에필로그: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세요!

누구나 ‘자기 효능감’을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이드 프로젝트라고도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심리학에서도 효능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어요. 아래는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직무 번영감 관련 연구*의 일부입니다. 저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를 되새길 때 이 글을 종종 꺼내 봐요.

  • 최정금, 김명소, <한국판 직무="" 번영감="" 척도의=""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 2018.8)

인간이면 누구나 본질적으로 자기계발과 성장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번영감(thriving)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때 경험하는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직무 번영감(thriving at work)은 개인이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활력감(Vitality)과 학습감(learning)을 동시에 경험하는 긍정 정서 상태를 정의한 용어.

각 구성요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활력감(vitality)은 활기찬 감정과 에너지를 이용하는 느낌을 나타낸다. 활력감은 직무수행시 긍정적 자극을 주며, 직무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다. 한편 학습감(learning)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성장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학습감으로 인해 직무에서 지속적으로 개선이 이루어지고,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직무 번영감을 충분히 느끼는 조직 구성원은 그렇지 않은 구성원보다 과업수행 수준이 높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혁신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 번영감은 또한 동료로부터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시키고, 구성원의 직무탈진을 줄이고, 더 나은 건강관리를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 회사에서 느끼는 업무 만족도의 기복과 상관없이 직무 번영감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챕터1에서 설명했듯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2019년 12월, 한 행사에서 필자가 ‘사이드 프로젝트 서비스 디자인’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준 물론 처음에 시작하는 건 어려울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에선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회사에선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의 직무, 하나의 기능으로서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인식되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생각들이 옛날부터 학습된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1960~1980년대에는 기업들이 높은 효율성을 위해 분업을 추구했죠. 그때의 산물일 뿐 결코 현대 사회에서도 본받을 만한 미덕이 아닙니다. 제가 극복해야 했던 오해와 눈총은 ‘다르면 틀리다’라는 것이었어요. ‘남과 다르게 저런 일을 하면 본업은 대충할 거다’, ‘책임감이 약할 거다’와 같은 시선들이 있었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는 사실이 저를 ‘모난 돌’로 만들 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 반듯한 네모 안에 들어맞게 웅크리고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에요. 그건 제게 더 큰 스트레스가 될 테니까요.

사람이 건축물을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어디에 관심을 집중하는지 생각해보세요. 뻔한 것이 아니라 변주가 있는 부분, 튀는 부분, 모난 부분이에요. 저는 조직에 속해 있을수록 ‘모난 돌’이 되어야 한다고, 검은색 수트에도 어울리는 ‘오렌지색 양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신의 정체성이자 브랜드가 될 테니까요.

최근에는 많은 기업에서 색깔이 분명한 사람,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 일의 경계를 확장하고 자신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사람을 새로운 인재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을 인재로 여기고 선호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뜻이죠.

주변 반응만 살펴보더라도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돈을 제법 벌었다며 자랑을 늘어놓던 지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 뭐가 제일 좋아요?

그가 기대했던 답변은 아마 “부동산 투자로 얻는 수입에는 비교가 안 되죠”나 “소박한 명성이나 얻는 거죠” 정도였겠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저는 어느 회사에 다니는 서비스 디자이너라고 저를 소개하지 않아요. 대신 “서비스 디자이너 이승준, 레드버스백맨입니다”라고 소개하죠. 회사의 타이틀 떼고 나라는 브랜드를 만든 것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입니다.